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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가요데이트

사연과신청곡

방송 중독증

2014.03.01
작성자배 해수
조회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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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들 했다. T V 를 많이 보게 되면 어느 시점에 가서는 우리의 뇌가 정지 상태가 되고 만다는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텔레비전을 오래 시청하게 되면 바보처럼 입을 반쯤 벌리고 보게 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어떤 일이나 몰두 하게 되면 정신을 다소 빼앗기게 마련이다.

텔레비전을 보게 되면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느라고 다른 아무 일도 못하지만, 라디오는 들으면서도 온갖 일을 다 할 수 있어서 내게는 라디오가 더 없이 좋은 친구다.

그리고 라디오의 최고의 장점은 여러 가지 일을 상상을 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또한 좋은 노래를 언제 어디서나 골고루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할 수 있는 일로는 인터넷. 독서. 방청소. 설거지 등, 인데 이런 재미로 아주 오래전부터 라디오 방송의 열렬한 애청자가 되었는데 몇 년 전에는 아이들이 작고 예쁜 모양의 트랜지스터를, 생일 선물로 사다주는 통에 그전보다 더욱 열심히 듣게 되었다.



흘러간 노래에서부터, 최신 가요와 팝송과 민요 클래식에 이르기 까지,언제 어디서라도 들을 수 있어 좋았고. 또 문학이나, 시사, 예술을, 아무 부담감 없이 듣고 배울 수 있어 무엇보다 좋았다. 진달래 만발한 산속에서 시 낭송을 들을 때면 자연의 풍광이 너무 좋아서, 혹시 내가 무릉도원에 와 있지 않나 하는 착각을 하기도 하고 ... 하기야, 무릉도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라디오 방송과 인연을 맺은 것은 다소 깊은 사연이 있다. 아들이 대학에 입학해서 기념으로 컴퓨터를 사주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컴퓨터를 하는 것을 보니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학원에 등록해서 조금 배우고 아들에게도 대충 배우기도 했다. 아들에게 처음 인터넷을 배울 때는 아들이 삼십분쯤 가르쳐 주더니만 “어머니 장하십니다.” 라고 칭찬해놓고는 그 이튿날은 길을 잘 찾지 못한다고 면박을 주었다.



아들은 내게는 무서운 선생님이자. 절친한 친구이다. 컴퓨터를 처음 배울 때는 딱히 쓸데가 없어서 노래가사나 시를 적어서 매일 프린터를 하고 있으니 아들의 말이 “ 어머니 그렇게 쓸 만한 데가 없으세요” 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군대를 가게 되었는데, 아들에게 편지받는 즐거움을 주자는 뜻에서 사흘이 멀다하고 편지를 한통씩 워드로 찍어서 프린터를 해서 보냈다. 그 후 어느 날 아들에게서 답장이 왔는데 “ 어머니 편지가 너무 딱딱하고 교과서 적이라서 질식사 할 것만 같습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편지를 보내는 나는 몰랐지만, 편지를 받는 아들에게는 프린터 한 편지가 공문을 받는 기분이었으리라. 아들의 식상한 말이 대략 짐작이 되었다.



이 말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그때부터 너한테 편지 자주 하나 봐라 하면서 너희 엄마가 정말 글을 잘 쓰나 못쓰나 테스트 해보자는 뜻에서, 라디오 청취자 프로그램에 많이 참여하다 보니, 아들에게 보내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것이 라디오에서 내 사연을 읽어 줄때면 마치 전기에 감전 되듯 전율과 흥분을 느꼈다.



어떤 때는 내 글도 방송국에서 인정을 해 주는구나 하는 마음에 한없이 행복해 하기도 했다. 또 월말이면 이런 저런 선물이 배달되어 오기도 했었다. 화장품. 손목시계. 도서 상품권. 등이었는데, 작은 것이지만 받는다는 기쁨에 너무 좋았다. 우선 방송국에서 내 사연을 많이 읽어준다는 것은 그만큼 내 글을 인정해 준다는 뜻도 되어서 혼자서 너무 신이 났다.



또한 어른 생신이나 형제, 친구 생일이 되면, 내가 돈으로 선물을 사서 보낼 형편이 안 되니까. 내 보잘 것 없는 재주로 몇 줄의 글을 정성스럽게 써 보내면, 멋진 꽃바구니를 보내 주었다. 그렇게 해서 받은 꽃바구니가 10개가 훨씬 넘었다. 그래서 시누이에게, 친구에게, 친정오빠에게, 골고루 선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재미를 붙여서 쓴 글이 일년에 약 백 여 통은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해본다. 너무 많이 참여하다 보니 라디오 어느 프로에서든지 내 이름을 모르는 진행자나 피디가. 없을 정도였다.

그 후 전화로 신청곡도 청해보고, 잠간이지만 녹음도 해보고, 퀴즈에도 참여해 보고, 더러는 전화로 노래도 해보고는 했는데, 어쩌다가 전화로 대화를 하려면 왜 그렇게 긴장되고 떨리던지 .....

한번쯤은 경험 해 본 분들은 알 것이다.



방송에 연결되기 전, 미리 물 두 컵 정도를 마시고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데, 진행자가 전화해서 다음에 시켜 주겠다고 양해를 구하면, 그럴 땐 애꿎은 물만 자꾸 먹게 된다. 목소리도 예쁘지 않으면서 전화대화도 많이 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프로 디제이와 대화 도중 너무 긴장해서 잠간 말문이 막혀서 말을 못한 적도 있었다.



그때는 심장이 멎어서 내가 죽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아주 잠간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

나중에 의사 선생님께 그 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너무 긴장한 탓이라고 한다. 한창 재미있어서 방송에 많이 참여 할 때는 여러 방송국에서 사흘에 한 번씩 내사연이 나왔다.





그 후 방송공포증을 극복해 보자는 뜻에서 전화 대화나. 신청곡 을 청했는데, 여러 번 참여해 보았지만, 지금도 떨리는 것은 마찬가지 일이다.

방송에 많이 참여하다보니 대전의 낭만이 있는 곳에 라는 프로에서는 한번은 전화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부산의 애청자 대표로 뽑아준다고 해서 대표 노릇을 하느라고, 그 프로 홍보도 많이 했다. 대구의 동생을 노래도 시키고, 경주의 올케도 노래를 시키기도 했었다. 노래를 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방송국 측에서 빨리 선물을 보내주지 않아서 내가 시골에 갈 때면 빚쟁이가 되었다.



“형님 방송국에서 왜 선물 안 보내주나요” 라고 해서 여러 번 혼 줄이 난 적이 있었다. 방송에 많이 참여하다보면 오페라 공연티켓이나, 가수 콘서트티켓이 서비스로 날아온다.

그럴 때는 딸이나 아들에게 건네주면 좋아라고 한다. 덕분에 딸이나 아들에게 내 점수가 올라간다. 또 방송국에서 선물이 날아오면 이웃과도 나누어 쓰기도 하니까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격이 되기도 한다.





그 후로 글을 써서 하얀 봉투에 넣고 주소를 쓰고, 우표를 부치는 재미도 있었지만, 그 일에 너무 열중하다보니 어느새 방송 중독증이 되어 있었다. 커피에나 술에 중독 된 사람처럼, 아편에 중독 된 사람처럼,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사람이 살아가는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방송국 측에서 너무 많이 참여해서 싫어하는 줄도 모르고, 눈치도 없이 죽어라고 참여하다 보니 어느새 방송중독증이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방송국 피디가 하는 말이 “방송국 하나에, 한 프로만 택해서 참여 하세요” 라는 말을 듣고는 이제까지 그런 눈치도 모르고 설쳐댔구나 하고 생각하니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옛 말에 양반은 글 덕 상놈은 발 덕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두 가지 덕을 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