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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오브 팝

행복이 모습을 드러낼 때

2021.04.30
작성자이진화
조회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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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미국의 한 여성이 쇼핑 후에 차로 갔다. 그때 차 안에 4명의 남자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쇼핑백을 떨어뜨리고 권총을 꺼내 소리쳤다. “나 총 가지고 있어! 총 쓸 줄도 알아! 차에서 빨리 나와!” 남자들은 놀래서 뛰쳐나와 미친듯이 도망갔다. 그녀는 떨면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시동이 안 걸렸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자세히 보니 자기 차가 아니었다. 자기 차는 6-7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녀는 곧 자기 차를 타고 경찰서로 갔다. 담당 경찰이 그녀의 얘기를 다 듣고 의자가 넘어질 정도로 웃으며 카운터의 다른 쪽 끝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남자 4명이 “곱슬머리에 두꺼운 안경을 끼고 키가 150센티도 안 되는 난폭한 여자가 권총으로 위협해 카잭킹(carjacking)을 당했다.”고 신고하고 있었다.



차의 소유권에 대한 잘못된 오해가 폭력을 낳았듯이 함께 살아야 할 세상에 대한 잘못된 소유의식은 폭력을 낳는다. 소유의식은 불행과 가깝고 공유의식은 행복과 가깝다. 행복을 원하면 주위를 행복하게 해야 한다. “괜히 남 좋은 일만 했네!”란 말을 “남 좋은 일 해서 기뻐!”라고 바꾸면 신기하게 자신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



소유의식보다 존재의식이 더 중요하고 존재의식보다 관계의식이 더 중요하다. “내가 어떻게 살까?” 하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문제는 더 중요하다. 남을 조금 더 배려하며 보다 많은 사람들과 사랑과 평화를 나누며 사는 ‘여백의 삶’은 행복의 제일 요체가 된다.



요새 자식을 위해 마음과 정성과 물질을 다 쏟아붓는 부모가 많다. 자식이 자신의 투사대상이 되면 자식을 위해 일한 것이 결국 자신을 위해 일한 셈이 된다. “무엇을 했느냐?”보다 “어떻게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열심히 땀을 흘려도 자신만을 위한 일한 것이라면 삶의 빛깔은 어둡게 된다. 동양화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은 여백에서 나오듯이 삶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움도 여백에서 나온다.



삶의 여백을 가지고 남에게는 조금 더 쓰고 자신에게는 조금 더 절제하며 사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다. 행복은 소유(having)보다 존재(being)에 달려있고 더 나아가 존재보다 관계(relating)에 달려있고 더 나아가 관계보다 헌신(devoting)에 달려있다. 자기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자기 존재의식’만큼 남의 존재를 귀하게 보는 ‘타자 존재의식’도 중요하다. “내 따뜻한 시선을 얼마나 남에게 주느냐?”에 따라 행복은 더욱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한규의 <월간새벽기도> 중에서-